천사와 악마

역할의 차이인가?

공헌배 | 기사입력 2020/03/13 [09:37]

천사와 악마

역할의 차이인가?

공헌배 | 입력 : 2020/03/13 [09:37]

 

천사와 악마는 어떤 존재자들일까? 서로 원수지간일까 아니면 역할상의 차이일까 이 두 존재자들 계층의 특성은 무엇일까라는 질문들이 나올 수 있다.

 

한 예를 들어보자,

 

, 마귀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지 않았다는 바르트의 견해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시킨다. 천하 만물 가운데 신이 창조하지 않은 그 어떤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물론 없다고 해야 한다. 그리고, 마귀가 없으면 성경에는 천사와 함께 마귀에 관한 말이 많은데 이는 어떻게 할 것인가? 마귀를 부인하면서 마귀와 유사한 존재 양태를 가지고 있는 천사의 존재는 어떻게 인정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바르트의 주장은 정당한 주장이 아니다(최덕근, “개혁교회의 천사론박사학위 논문, 계명대학교, 2007, 118).

 

개혁교회의 전통은 하나님의 전능성을 적극적으로 긍정하는데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전능성을 절대긍정하기 위한 조처로써 마귀는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니라는 이러한 설명들이 나왔지만, 이것은 신관과 창조론에 입각한 형이상학적인 진술로써는 가능할지 몰라도, 경험적 진술로써는 그렇게 말할 수 없다는 약점을 지닌다. 그리고, 분명히 실체와 인격을 가지고, 생명력과 자발성을 가졌으며, 형태와 권세와 움직임을 가진 실존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창조하지 않았다는 것은 모순이다. 천하에 하나님이 창조하지 않은 어떤 것이 존재할 수 있는가?(최덕근, 138)

 

그러면 이러한 천사론이 언제부터 점차 사라지게 되었는가? 성경의 증언과 초대교회에서부터 활발하던 천사론 및 마귀론은 중세에 절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14세기 이후 신앙과 이성 또는 신학과 철학을 분리하려는 경향이 우세하게 되어, 감각을 통해서는 경험할 수 없는 순수한 정신적 존재인 천사가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되는 일은 드문 것이 되었다. 그래서, 종교개혁시대이후에는 개신교에서는 천사들에 대한 주장들이 점점 신뢰할 수 없는 하나의 신화론으로 간주되어 역사의 주인공인 그리스도의 뒤편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18세기의 이성주의와 함께 현대자유주의 신학에서는 천사들에 대한 믿음이 배제되었으며, 성경에서 증언하고 있는 이러한 천사론이 사라지게 되었다(최덕근, 139).

 

역사적으로 기독교회는 언제나 천사들의 존재를 믿어 왔다. 그러므로, 천사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성경의 권위를 부인하는 것이 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공격하는 것이고, 예수의 가르침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예수는 천사의 존재를 분명히 가르쳤기 때문이며, 성경이 그것을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혁교회의 신앙고백문에서도 천사들의 존재를 명확하게 가르치고 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하나님께 속해 있는 하나님의 봉사자이며, 하나님이 계신 곳에는 어디에도 천사들도 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세상 다스리시는 역사가 계속되고 있는 한 천사들의 사명도 있는 것이다. 한편 필자는, 천사와 마귀의 출생이 학자들 사이에 불일치하는데 대해서, 천사와 마귀는 공통의 뿌리를 갖고 있으며, 하나님의 창조 안에 속한다고 본다. 천하에 존재하는 모든 것 가운데 하나님이 창조하지 않은 것은 있을 수 없으며,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기 전에는 그야말로 아무 것도 없는 무()이기 때문이다(최덕근, 140-141).

 

필자는 한국 기독교인들이 천사들의 존재를 믿지 않았던 사두개인들처럼 되지 않기를 바란다(최덕근, 141-142).

 

이를 따라서 볼 때, 최덕근 박사는 칼 바르트의 천사론과 마귀론에 대한 존재론적 인식을 반대하여, 천사와 마귀는 존재론적 근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 존재의 근거는 성경이며, 천사와 마귀는 창조론적으로 동일한 뿌리를 갖고 있다고 했다.

 

현대에 들어서 나타난 철학의 한 주제는 존재이다. 그런데 사실 존재 자체존재자는 다르다. 마틴 하이덱거의 철학에 매료된 한 철학자의 주장을 따르면 오랫동안 서구 사회에서 받아들여져 왔던 존재, 즉 신()존재가 아니라 존재자였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말은 존재 자체를 설명했다고 여겼지만 바로 그것이 존재자였다고 한다. 존재 자체(being it self)으로 명명한 이는 폴 틸리히이다. 이는 마틴 하이덱거의 주장과도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박봉랑의 주장을 따르면, 틸리히는 신을 존재 자체로 이해하기 때문에, 성서에서 신이 설명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신 그 자체를 나타낼 수는 없다고 했다. 그래서 틸리히는 성서를 문자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상징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봤다. 즉 성서의 비문자화(非文字化)인 것이다.

 

물론 최덕근의 천사론에서도 틸리히가 다루어진다. 최덕근은 틸리히의 천사론이나 마귀론에 대한 존재론적 인식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천사를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한 것은 르네 데카르트도 마찬가지였다. 신보다는 불완전하지만 비존재는 아니다. 그러나 최덕근의 주장을 따르면, 틸리히의 주장에서 마귀는 비존재이다. 사실 틸리히는 이라는 실제를 인정한다. 그러나 마귀에 대해서는 그 이해가 달랐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신은 천사와 마귀를 창조했는가? 아니면 천사만 창조했는데 그 천사가 타락하여 마귀가 된 것인가? 천사와 마귀를 존재자로 여긴다면 이 세상은 신의 계획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다는 꼭두각시 놀음과 어떻게 결별될 수 있을까?

 

<욥기>를 보자, 욥은 엄청난 고난 속으로 내동댕이 쳐 진다. ? 하나님과 사탄과의 내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어전회의에는 사탄도 참석했는데, 그 당시 중동의 신관에서 사탄은 고발자 또는 검사와 같은 역할로써, 신들이나 천사들의 회의에 참석할 자격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사탄은 불청객이었는데도 갔거나 이유가 무엇이었던 욥기의 진술대로 하면 신들의 회의에는 사탄도 참석했다. 사탄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욥을 보았는데, 이 욥이라는 사람에 대한 의견이 여호와와 사탄이 달랐다. 그래서 드디어 내기가 시작됐다. 욥은 열 자녀들을 잃고 가진 재산들도 모두 잃었다.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세 명의 친구들까지 욥을 찾아가 정신적으로 괴롭힌다. 결국은 욥의 아내마저도 욥에게 공격했다. 인간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시련이었다. 이 모든 시련들을 아시면서도 하나님께서는 가만 두셨다. 욥의 생명 말고는 모두 사탄에게로 권력을 이양하셨기 때문이다.

 

전에 주기철 목사님의 아들이 간증하던 것을 잠깐 들었다. 그분의 간증을 따르면, 화장실에서 하늘을 쳐다보면서 하나님께 따졌다고 한다: ‘하나님이 어디 계십니까 하나님이 계시는데 왜 나의 아버지가 저렇게 고통당합니까?’

 

기독교의 하나님은 고통 속에 있는 인간들에게 위로를 하실지는 몰라도 그 고통을 막아주시지 않았을 때도 많았다. 이는 그분의 사랑하시는 아들에게조차도 그리하셨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쏟으셨나이까?(버리셨나이까?)” 이는 예수님께서 비명을 지르시면서 외치신 음성이었다. 기독교의 신은 자신의 아들조차도 버릴 수 있으신 분이다. 하물며 인간들을 못 버리실까?

 

흔히 신정론에서는 하나님은 선()인데, 왜 세상에 악()이 존재하느냐고 묻는다. 그런데 언어철학에서는 선이나 악 모두 말해질 수 없다. 왜냐하면 세계에는 가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논리철학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육신을 가진 인간은 몹시도 고통스러워 한다. 그런데 그 고통 속에 인간들을 그대로 놓아두신다. 다시 말해 사탄을 물리치지 않으시고 사탄이 인간들을 고문하도록 놔 두셨다. 욥기가 그랬고, 사사기도 그런 식이다. 이를테면 하나님의 자녀들인 이스라엘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의 손으로 직접 때리지 아니하시고, 이웃 부족들에게로 넘겨 버리신다. 그리되면 이스라엘은 죽을 고생을 한다. 그제서야 비로소 이스라엘은 야훼를 찾는다. 그 때 야훼께서 나타나시어, 사람을 세운 후, 멋지게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셨다. 이게 성경에서 소개되는 하나님의 행동 패턴이셨다.

 

즉 하나님은 이방 부족이나 사탄에게로 자기 자식들을 넘겨버린다. 그러면 사탄이나 이방 부족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이스라엘을 괴롭힌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고통 중에 신음하게 된다. 힘 없는 이스라엘이 의지할 분은 하나님뿐이다.

 

이와 같은 패턴에서 사탄이나 악마의 역할은 무엇일까? 당연히 악역(惡役)이다. 욥기를 따르면, 사탄의 공격은 여호와 하나님의 허락 하에서 가능하였다. 그렇다면 욥을 괴롭히는 사탄만 무서운가 아니면 그 고통을 허락한 하나님이 더 무서운가?

 

사탄의 역할에 대한 신약성경의 구절도 살펴보자,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 받으러 광야로 가사”(마태 4:1). 이를 따르면, 예수께서는 광야로 갔다. 누구에게 이끌리어 광야로 가셨는가 하면 성령에게 이끌리었다. 그렇다면 왜 예수께서는 광야로 가셨는가? 마귀에게 시험 받기 위해서였다. 즉 마귀는 예수를 시험하는 시험관이다. 도대체 그가 누구이길래 하나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마저도 시험한단 말인가? 그런데 더 놀라운 기록이 있다. 그리로 안내한 분이 성령이시다. 즉 성령께서는 예수를 마귀에게로 보내어 시험받게 하셨다. 그래서 이 구절을 따르면, 성령께서 예수를 마귀에게로 안내했다.

 

이상하지 않은가? 왜 성령께서 예수를 마귀에게로 보내는가? 직접 시험하면 안 되는가? 그런데 그 본문을 따르면, 하나님께서 직접 시험치 않으시고 악마에게로 자신의 아들을 보내셨다. 외아들조차도 악마에게로 보내 시험받게 하시는데, 하물며 인간들을 악마에게로 보내지 않으실까? 그렇다면 누가 더 무서운가? 시험하는 악마인가 시험받도록 놔 두시는 하나님인가?

 

소개한 모 목사님의 논문을 따르면, 천사와 악마는 존재론적으로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천사와 악마는 역할들이 달랐다. 그렇다면 천사와 악마는 같은 편일까? 다른 편일까?

 

혹시 적대적 동반자 관계라는 말 들어보았는가? 두 존재자들이 서로 적대적인 듯 보이는데, 뒤로는 손을 잡고 있는 것 말이다.

 

이스라엘에서 행해졌던 몰렉교를 생각해 보자, 몰렉은 왕()이다. 즉 몰렉교는 왕신(王神)을 섬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몰렉은 암몬족의 신이다. 그러면 몰렉교와 유대교는 그 뿌리가 어떨까? 당연히 다르다. 그런데 주의할 것이 있다. 암몬족과 이스라엘 민족과는 매우 가깝다. 성경의 주장대로 하면 암몬과 모압족은 롯에게서 나왔는데,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다. 즉 같은 뿌리다. 게다가 암몬족은 아람족에 속한다. 그런데 야곱의 후손들도 아람족 계열인 듯하다(“조상은 유리하는 아람 사람으로서26:5). 그래서 아람족 계열의 민족이 한쪽에서는 야훼를 섬기고 한쪽에서는 몰렉을 섬겼다. 물론 몰렉교의 의식은 이스라엘에서도 행해진 듯하다. 즉 이스라엘에서는 야훼하나님과 몰렉을 모두 섬겼다고 성경이 증언했다(18:21; 20:1-2; 18:10; 왕하 16:3; 23:10; 7:31, 32:35; 16:20-22).

 

뿐만 아니라 솔로몬은 암몬의 여인을 아내로도 맞이했는데, 솔로몬은 그의 아내들이 섬기던 신들을 이스라엘에서도 숭배하도록 허락했다. 그러므로 당연히 솔로몬의 주변에서도 몰렉교 신자가 있었다고 여겨야 한다(왕상 11:5, 33). 물론 몰렉교는 자녀들을 불에 태워 제물로 바쳤다고 한다. 그런데 많지는 않지만 사사 입다 역시 자기 딸을 여호와께 번제로 드렸다(11:30-31과 비교).

 

즉 구약성경에서의 주류는 여호와 신이시지만 이스라엘에서는 야훼신앙의 주변에 몰렉이나 다른 종교의식들도 나타났다.

 

그렇다면 구약의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유다를 어디로 넘기셨는가? 앗시리아와 신()바빌로니아다. 두 제국 모두 잔인하다. 하나님은 말 듣지 않는 이스라엘을 그 두 제국에게로 넘기셨다. 역시 하나님의 주특기가 나타난다. 제국(帝國)들에게로 넘어간 이스라엘과 유다는 혹독한 시련들을 겪는다. 나는 하나님이 너무 너무 무섭다. 두려워서 미칠 정도다. 그렇다면 신약은 다른가? 뭐가 다른가? 로마는 마침내 예루살렘으로 쳐들어 갔고, 성전을 털어갔다. 이건 유대인들에게는 신성모독이나 다름없다. 아마도 유대인들은 로마인들에게 망한다고 여기기보다 하나님에게 버림받았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나는 모 성서신학자에게 질문했었다: “헤롯이 세운 성전은 여호와의 성전이며 야훼종교의 성전입니까?” 그랬더니, 그가 왈: “그렇습니다!”

 

정리해 보자: 첫째, 천사와 사탄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 사탄 역시 여호와의 하늘보좌회의에 참석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한 권한 안에서 활동했다. 둘째, 천사와 사탄은 역할 상 정반대 편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둘 모두 공존하면서 그들의 직무를 실행한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때로는 이웃의 적대 부족들에게로 때로는 제국들에게로 넘겨버렸다. 넷째, 하나님께서는 욥을 사탄의 시험 가운데로 넘겨버렸다. 다섯째, 하나님께서는 외아들조차도 버리셨다(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따니: 이 부분은 마가와 마태가 다르게 돼 있음).

 

하나님은 순교를 기뻐하시는 모양이다. 사람들은 흔히 천국간다고 말한다. 천국에 들어가기가 쉬울 것 같은가? 어려울 듯하다.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마태 7:13)고 하셨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들이 적다고 하셨다. 즉 구원의 문은 좁다. 찾는 이들도 많지 않다고 했다.

 

개혁교회의 교리를 따라도 구원론은 협소해지는 경향이 있다. 어느 대학교에 입학하는 문도 넓지 않은데, 하물며 천국의 문이겠는가? 다만 대학교는 인간의 지능으로 시험하지만 하나님은 다른 걸로 시험하신다. 하나님의 시험을 결코 쉽게 생각하지 말라! 나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시험(유혹)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가 너무 소중하게 들린다. 누가 감히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넘겨버리시는) 시험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나는 너무 연약하여 하나님의 테스트를 견딜 수 없다.

 

하나님 아버지, 저를 시험으로 넘기지 마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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